한편 저는 이 시기에 뒤늦게 입학한 대학원을 다니면서, 새로운 학문을 배운다는 기대와 호기심 때문에 대학원의 학교생활을 무척 진지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또 새로운 영역에서 배우는 학문의 깨달음이 지금도 저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이 기간에 저는 제 아이들을 처음으로 영어 공부를 시키면서부터 아이 둘 모두를 Y 대학교에 입학시킬 때까지,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일기장에 메모해 두었던 쪽지 일기장을 모아서 『사교육비 안 들이고 자녀 영어 회화 공부 성공하기』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이 발행되자 조선일보(맛있는 공부), 동아 여성 등, 여러 곳에서 인터뷰 신청이 왔고, EBS 방송 출연, 교육 1번지 동네, 강남교육청(소속은 기억이 안 납니다.)에서 강의 요청이 와서 현장 강의도 해주는 등 갑자기 제가 바빠졌습니다. 이 책으로 인하여 저의 이름이 매스컴에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갑자기 저는 본업보다도 이 일 때문에 더 분주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아내가 저를 보고 잠깐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조용히 말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쓴 저 책 절판해 주세요. 당신이 너무 분주해 하시는 것을 보니 집안의 분위기가 차분하지 못한 것 같고, 특히 아직도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도 덩달아 안정되지 않는 것 같아요. 만약에 책을 절판하지 않으면…, 당신, 저는 당신과 이혼하겠습니다.” “옛!?” 저는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있다가 물었습니다. “정말이요?” “예.” 아내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이 아직 졸업도 못 하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당신이 집안 분위기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아이들 마음이 들뜰 수 있어요.
그러면 아이들 장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져요.” “절판해 주세요.”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는 엄마의 굳은 의지의 얼굴에는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그날은 그냥 그렇게 보냈습니다. 다음날, 저는 사무실에 출근하여 이것저것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내가 이런 결단을 내릴 때까지 며칠이고 또 며칠이고 수많은 고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상황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제가 하는 일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내가 정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맞나?’ ‘왜, 나는 아내의 깊은 생각에 미치지도 못하고 이런 말이 나올 때까지 미련스럽게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있었을까?’ 이런 자책감에 휩싸이자, 아내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울컥 들었습니다. 아내가 이런 말을 할 때까지는 아내는 저의 행동을 쭉 관찰해오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저에게 이혼이라는 극한의 카드를 사용하면서 호소한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저는 마음을 정리한 뒤, 그날 오후, 출판사에 연락하여 이 책의 절판을 통지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집에 돌아온 저는 아내에게 절판한 뜻을 말해주었습니다. 아내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저의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우리 부부는 서로의 의견을 좀 더 친밀하게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서점 여러 곳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책이 절판되었다고 답변해 드렸습니다.
- 제 4부 본문중에서 -
저는 아내에게서 두 아이가 엄마에게 자신들의 장래 목표에 대하여 한 말들을 어느 정도는 들은 상황이었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저는 두 아이를 위하여 전열을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조이고 생각을 고쳐 보고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이는 저에게 아버지처럼 세무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무사 고시(考試)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래, 함께 노력해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작은 아이도 저에게 세무사 고시에 마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걱정하면서도 “알았다, 좀 더 생각해 봐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장래에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자신이 관심 있는 곳이면 응원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 모두 아빠와 같은 세무사업을 목표로 선택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실로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고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아이가 스스로 고시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굳은 의지의 표현인 것을 저도 잘 압니다만, 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도전이고
지루하고 괴로운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것을 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전문직 고시 시험은 시험의 범위가 넓고 어려워서 적어도 수년간은 열심히 공부해야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간도 사람에 따라 능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3년 미만 걸리는 사람은 거의 희귀하고, 5년 이상 걸리신 분도 많습니다.
이렇듯 세무사 고시 역시 시험이 3차까지 있는데 1차는 객관식 시험, 2차는 주관식 시험, 3차는 6개월의 실무수습입니다. 그런데 2차까지만 합격하면 3차 실무수습은 평이하므로 2차 시험을 통과하면 실제 합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사회적으로 덕망이 있고 존경받는 분들 중에는 고시 공부를 오래 하여 합격하신 분이 많이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그 오랜 기간이라는 이 기간이 3년이 초과되든, 5년이 초과되든 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기간이라면 고시 시험 합격까지 걸리는 보편적인 기간입니다.
오히려 이 기간에 전문 지식을 보고 또 보아 깊이 있는 진정한 실력을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1부에서 말씀드린 저의 세무사 고시 합격도 제가 손에 책을 끼고 다닌 지 10년 넘게 걸려 합격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 두 아이가 정식으로 세무사 고시 공부를 하겠다고 의사표시를 했을 때 선뜻 “잘 생각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 주위에서 세무사 고시 공부를 한다고 말하고 공부를 시작한 지 몇 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시는 분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빠인 저는 속으로 ‘앞으로 고생길이 험난한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 잘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해 보자.”라고 두 아이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 제 4부 본문중에서 -
저의 아내는 매일 교회에 갑니다. 아내는 두 아이를 서로 비교하지 않고,
아이들의 목표가 각각 성취되기를 매일 기도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다녀온 후에도 틈나는 대로 기도를 드립니다. 저의 집에는 가정 도우미도 없고 집안일을 별도로 좀 도와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집안일을 엄마가 혼자서 도맡아서 하시는 것이 힘들면서도 엄마는 매일 한 번씩은 교회에 가신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보아 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기도방에서 엄마가 저녁마다 기도를 드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아이는 엄마 말을 참 잘 듣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너희들도 이제부터 교회에 갈래?”
“아뇨, 저희들은 교회에 갈 필요가 없어요. 엄마가 교회에 가셔서 저희들 몫까지 다 기도하시니 저희들은 안 가도 됩니다.”
뜻밖에 이런 말을 해서 집안 식구들이 한바탕 웃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모든 행동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 4부 본문중에서 -
세무사가 되고자 하는 자신의 목표가 설정된 뒤, 두 아이는 각각 자신의 목표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아내 역시 집안을 조용히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했고, 친구 모임이나 학교 동창회, 해외여행 헬스장 등 눈에 띄는 외부 출입은
거의 자제하였습니다. 정말로 헌신적으로 두 아이의 뒷바라지에 자신의 역량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의 기간은 서로의 일을 격려하며 노력하는 기간이었고,
이 기간에 아이들은 매일 저녁 11시가 넘어서 집에 왔으며, 어느 때는 얼굴이 핼쑥하고 어깨는 축 처져 비실비실 쓰러질 듯한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럴때마다 아이를 기다리는 아내는 눈물을 글썽거렸고, 저를 피해 기도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저는 아내가 아이들을 위하여 이렇게 간곡히 기도하는 모습을 수년째 수도 없이 보아왔습니다.
정말 아내는 자신의 일은 거의 못하고 아이 2명과 남편의 뒷바라지에 종일 동동거리며 쉴 틈 없이 움직였습니다.
아내의 나이도 한 살, 두 살씩 늘어 가는데 이렇게 바삐 움직이면 건강에 안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늦게 출근하면서 오히려 종전보다도 더 많이 집안일을 처리했습니다.
- 제 4부 본문중에서 -
아이들이 공부하려 아침 일찍 집을 나가는 것은 집(아파트 등)에서는 공부를 집중하여 오랜 기간할 수 없으므로 독서실을 정해놓고 계속 한 달씩 연장해가며 그곳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입니다. 두 아이도 아침 일찍 집을 나가는데, 작은 아이는 대학교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는 것 같고,
큰아이는 학원가 독서실을 이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독서실이나 학원이나 스터디 그룹을 열심히 다녔고, 자신들의 동창회, 친구 모임, 친지 모임, 여행 등도 가지 않았습니다.
특히, 꼭 필요한 친인척 경조사에도 한사코 참석하지 않으면서까지 절제해가며 세무사 고시 공부에 온 힘을 집중하였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결혼 초부터 금연하고 음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이런 일로 문제 되는 일은 없었으나,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고자 아이들이 이토록 노력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집을 절간처럼 조용히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에 말소리도 낮추고, TV도 거의 안 보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서운한 일이 있어도 부부끼리 의견 대립이 없어야 하며,
아이들에게 항시 엄마 아빠가 다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시생은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밖에는 어느 곳에도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주위 사람에게는 뭔가 잘못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이웃의 시선을 피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눈치 보며, 숨죽이고 웅크리면서 버텨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기나긴 시간,
합격의 보장도 없는 고시공부를 하면서 좌절하여 시험을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는 아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제 4부 본문중에서 -
이렇게 아이들이 공부하는 중에 대학도 졸업했으며,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스스로 고시촌, 학원가, 독서실, 스터디 그룹 등,
여러 경로를 부지런히 오가면서 세무사 고시 공부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이 도왔다 할까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끈기 있게 노력한 결과물로 차례로 세무사 고시에 합격하여 세무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학원가와 고시촌도 졸업하고,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되니, 저 역시 세무사이기 때문에 우리 집안은 3부자 세무사 가족이 된 것입니다.
조용히 생각해 보면, 저에게는 꿈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어떤 점이 우리 집안에 힘이 되어 돌봐 주셨을까요?
결혼 후, 보잘것없는 저와 아이들에게 보여준 아내의 헌신적인 정성스러움이 저에게는 현대판 평강공주로 생각되었고,
아이들에게는 현대판 한석봉의 어머니로 생각되는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주일마다 빠짐없이 아내와 함께 교회에 갑니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모든 분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립니다. 또, 저는 아내에게 배운 것이 참 많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가족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에게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 교회에 나가면서 이분 저분께 배운 것이 많습니다. 특히, 성경을 읽으면서도 배운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 인지 그때마다 느끼는 생각이 있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노트에 간략히 적어놓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런 후, 한 기간이 지나서 노트를 펴보면.
다시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잊었던 기억을 되살리고, 새로운 각오를 하고…. 이런 생활은 모두 아내에게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이런 배움의 덕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저는 아내의 포근한 마음과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스러움을 느낍니다.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저의 아이들은 엄마를 무척 좋아합니다.
아내가 주위에서 부딪치는 모든 일을 말없이 참으며, 끊임없이 이끌어 가는 끈기가 우리 3부자를 세무사 고시에 합격자로 만들어낸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제 4부 본문중에서 -
얼마 전 아내가 칠순이 되었습니다.
남편과 아들 2명, 모두 3명을 세무사 고시에 합격시킨 엄마를 위해 아이들과 며느리가 칠순 생신 잔치를 한다고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논의했으나 아내의 간곡한 부탁으로 여행은 한 달 후, 저와 아내 둘이서 국내여행을 예약하고,
생신 당일은 생일 케이크 한 개와 저와 아내, 며느리, 아들 2명, 합 5인이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점심 뷔페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날 점심 뷔페 2시간 반의 식사시간 동안 우리 식구 5명이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 이야기로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서로 웃고, 박수 치며, 고개를 숙이는 보람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 가족들이 모인 엄마 칠순 축하연에서 아내가 그렇게도 기쁘게 환히 웃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 호텔에서 준비한 생신 케이크가 들어왔습니다. 생신 케이크를 앞에 두고, 며느리와 아이들은 엄마의 손을 꼭 잡으며 힘주어 말했습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합니다.”
- 제 4부 본문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