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더러 맞벌이하라 하면 결혼 안 할래요.”
29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생생하게 저의 귓가에 들려옵니다. 그토록 예쁘고 상냥하고 귀여운 그 입에서 어쩌면 남같이 토라지듯 던지는 그 말이 그렇게도 차가울 수가 있을까요?
사실 저는 이 처녀와 결혼 후에 아내와 함께 맞벌이하게 되면 가정 경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순간, 얼떨결에 대답한다는 저의 말이 “인숙 씨! 제가 언제 맞벌이하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까?
저는 앞으로 절대로 그런 말을 안 합니다. 저는 인숙 씨가 맞벌이할 수 있는 분 이라는 이유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인숙 씨의 상냥함과 교양 때문에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해도 그녀는 잘 믿어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정말이에요? 저는 맞벌이는 정말 못합니다. 저를 약사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를 평범한 어느 처녀라고 생각하세요.”
“네, 저는 어느 경우에도 제가 벌어서 가정을 꾸려 나가겠습니다. 약속하겠습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서 말을 했습니다.
“사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게 되면 어느 정도 경제적인 득은 있겠으나, 가정의 중요한 어느 부분은 잃어버릴 것입니다. 저는 경제적인 득보다는 가정의 중요함을 택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힘주어 말하자 그녀는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이 오간 뒤, 우리는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고, 저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아내는 저에게 그녀 자신을 맡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저의 부부는 29년 전, 장모님과 저의 형수님의 주선으로 만났습니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처음 선을 보았을 때, 저는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약사라는 보증서가 있었고 모습이나 품행이 깔끔하여 누가 보아도 저에게는 과분해 보였습니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녀는 애교 있고 상냥하였지만, 도도한 편
이었고, 소신 있는 당당한 태도는, 항상 교양 있는 행동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듯한 개성 있는 언행이 언뜻 교만하게까지 보였습니다만, 저는 티 없이 맑고 순박한 이 꿈 많은 처녀의 그런 점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결코 그녀를 위하는 것이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처음 만나 3개월 정도가 지난 후에 저는 이 처녀에게 인천 월미도 해안가에서 결혼을 청하였고, 이때 결혼 조건이 또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결혼식은 반드시 교회에서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저는 이때까지 종교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결혼식 하는 일은 전혀 생각 밖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이 두
가지 약속을 기꺼이 수락하였습니다. 이렇게 저의 아내는 저에게 절대로 맞벌이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과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약속을 다짐 받은 뒤에야 결혼을 승낙했습니다.
그 뒤 곧바로 저희 부부는 약혼식에 이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저의 아내는 맞벌이에 대한 미련도 전혀 갖지 않았고, 서로 이에 관한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그저 보통 주부로서 평범한 봉급생활자의 아내로서 우리 사이에 생긴 두 아이를 돌보며 교육에 전념하였습니다.
친척들 모임에 가면 간혹 윗동서께서 생활도 넉넉지 못한데 왜 아까운 면허증을 썩히느냐고 반문하며 좀 바보스럽다는 듯이 묻지만, 저의 대답은 그저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돈 좀 버는 것보다 엄마 손에 자라는 아이들 교육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당장 손해 보는 듯해도 부모 뜻대로 아이들이 잘 자라준다면 먼 훗날 그것이 훨씬 득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29년 전, 당시 저의 이런 말은 어떤 소신이 있어서 말하였다기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에서도 아내와의 처음 약속을 지키려는 저의 절규에 가까운 대답이었습니다. 동기야 어쨌든 그 후에도 저희 부부는 맞벌이를 해보라는 주위의 어떠한 권유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아내는 자신의 경험과 투지와 정성을 두 아이를 위해 전념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어느 가정교사도 어느 학원 선생님도 자식들의 어머니보다 훌륭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퇴근하면 항시 아내가 반갑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꼭 잡고 맞이하여 주었고,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이 함께 방에 있었으며, 정성스레 차린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랑이 가득 담긴 저녁 식사의 가족모임은 생에 대한 감사와 보람을 느끼게 하고, 아내의 가족 사랑이 행복이란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저에게 아내는 평강공주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속은 비어있으면
서 겉모양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는 멍게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총각 시절,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고, 담배도 잘 피우는 편이었습니다.
그러한 습관을 고치라는 여러 번 반복되는 아내의 간곡한 권유로 신혼 초에 드디어 그 어렵다던 술과 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술을 먹지 않게 되자 친구와 어울려 늦게 집에 오는 습관도 결혼 후 없어졌습니다. 장가간 후로 ‘인간 변했다’는 친구들의 조롱 소리를 귓전에 내던지고 퇴근 시간이 되면, 저를 기다리는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곧바로 집에 왔고, 퇴근 시간 이후에는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제가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있는 사람인 만큼 이웃이나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늘 겸손하게 행동을 조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보, 당신 절대로 부정한 짓은 하지 마세요. 우리가 살다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지면 저도 나가서 돈을 벌지요. 정말 부정한 짓은 하지 마세요. 저를 실망시키는 행동도요. 어린 자식에게 모범이 되세요. 얘들이 자라서도 우리 아빠가 정직하고 떳떳한 자랑스러운 아빠라는 소리를 듣도록 하세요. 어렵게 살아도 저는 좋아요. 지금 이 순간, 순간이 너무 행복해요.”
그러면서 처녀 시절 어느 책에서 감명 깊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해 주었습니다. 이야기 내용은 이렇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여러 명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어느 때나 다름없이 서로 자기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며칠 전에 우리 남편이 고급 옷을 사 주었어. 이 옷이 얼마인 줄 알아? 자그마치 백만 원이 넘는 옷이야. 어때 예쁘지?” 그러자 또 한 여인이 말을 이었습니다. “나는 우리 남편이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파이어 목걸이를 사 오셨어. 이 광채가 어찌 빛나는지 황홀해. 어때, 눈부시잖아?” 또 이 여인에게 질세라 한 여인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나는 엊그제 남편과 함께 보석상에 가서 칠보 팔찌와 다이아 반지를 샀어. 너무 좋아서 어제저녁엔 팔찌와 반지를 끼고 잠을 잤지.
자, 이것 좀 봐. 이렇게 반짝이니 최고의 보석이잖아. 어때, 아름답지?”
이렇게 저마다 자신들의 보석을 자랑하였습니다. 서로 한참 동안 큰소리로 웃고, 뽐내고 나자 여인들은 아까부터 말 한마디 못하고 저만치 서 있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한 여인이 물었습니다.
“아니, 아까부터 말 한마디 안 하고 계신데, 아줌마는 뭐 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자 그 여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있지요.” 여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모습도 초라해 보이고, 별로 자랑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여태껏 값비싼 보석들을 가지고 수다를 떨던 자기들의 말끝에, 무슨 굉장한 보석이길래 우리 앞에서 보석이 있다고 할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글쎄 보석이 뭐예요.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어요?” “보여 드리지요.” “잠시 집에 가서 보석을 가져오겠습니다.” 여인들은 더욱더 궁금했습니다. 얼마나 좋은 보석이길래 집에다
숨겨두고 있을까? 여인들은 이 세상에 제일 좋은 보석을 ‘이제 보는구나.’ 하고 기다렸습니다. 곧바로 여인이 도착하였습니다. 여인의 양손에는 두 아이가 손을 꼭 붙잡고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물었습니다. “그 귀한 보석을 좀 보여주세요.” 여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의 보석은 이 두 아이입니다.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귀한 보석이지요.”
그러면서 여인은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허황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아내는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덧붙였습니다. “저도 우리 두 아이가 저에겐 가장 귀한 보석이에요.” 이런 글을 읽고 나서 아내도 결혼 후, 자식을 낳으면 자식들을 보석처럼 갈고닦아 훌륭한 보석을 만들려고 마음을 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아내의 말과 행동에 감동을 받았고 아내가 자신이 직업을 갖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엄마의 역할에 충실해 보려는 굳은 의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저에게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자고 말해온 내용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저는 밤늦게 남아 잠자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홀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이 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아내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 일생을 바칠 각오를 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지금 말씀드린 여인들의 보석 이외에
여인들의 자랑거리는 아파트, 골프 회원권, 승용차, 고급 가구, 골프채, 유명 핸드백, 고급 옷, 남편의 지위, 학벌, 땅, 성형수술, 주식 등 숱하게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것들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여유가 조금 있어 이런 것들을 장만하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것들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우선순위를 차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자식들의 미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오간 후, 저의 두 아이가 커가는 모습과 장래 문제 그리고 교육 문제들을 아내와 긴밀히 상의하게 되었고, 우리 부부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며 아내의 생각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도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가 대화를 하면서 마음을 합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곧 사랑이었고, 이러한 일들은 아이들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자식을 어떻게 교육할까? 장래 10년 후, 20년 후, 그리고 30년 후 어떤 모습으로 아이를 가꾸어 나갈까?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부모의 선택이며, 부모가 어릴 때부터 어떻게 아이를 가꾸느냐에 따라 그 아이는 물론 부모들의 장래도 희비가 엇갈린다고 생각됩니다.
- 제 1부 본문중에서 -
큰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통지를 받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입학 통지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 아이도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기쁨과 더불어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어느 정도는 아이에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한글 읽기와 쓰기를 완전히 익히고, 우송되는 매일 학습지와 산수 문제도 많이 풀었으며, 그림책이나 동화책도 수백 권 읽었고,
그림 그리기, 자연 학습지, 노래 부르기, 존댓말 하기, 웃어른께 인사하기 등 나름대로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생활은 순탄했습니다. 이 시절 어느 아이도 그렇겠지만 간혹 보는 학교 시험은 거의 만점이었고,
학교를 즐겁게 다니는 아이 모습에 저희 부부는 항상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들리는 말에는 초등학교 때 비싼 수업료를 내고 사립학교를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형편에는 그럴 형편도 되지 못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특별하게 사립학교를 보내서 어린아이 마음을 우쭐하게 만든다든지, 아이 자신들이 생각할 때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벌써 부모님의 재력에 의지하는 버릇이 생겨, 성장 후에도 본인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특수한 집안이 아닌 보통의 많은 친구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습관을 갖는다는 것은 장래에 아이가 성장한 후, 여러 층의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생활을 하게 될 터인데 이렇게 어울리는 습관이야말로 그 어떤 교육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부모님들과 같이 여러 계층이 없습니다. 그저 순수하게 아이들만의 만남이 있을 뿐입니다.
그 안에서 여러 환경의 아이들과 만나 이런 일 저런 일에 부딪히면서 아이들도 여러 가지 문제를 어린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그 나름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성장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저의 이러한 생각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굳이 부모가 깊이 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정말 나쁜 쪽으로만 나가지 않는다면 학교생활도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도 아빠와 대화거리를 찾기 위하여 하루를 알차고 의미 있게 보내게 됩니다. 그런 후 퇴근하시는 아빠를 기다립니다.
제가 퇴근하여 식구들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있노라면 아이들은 학교생활에서 있었던 일과 집에서 있던 하루의 일들을 자랑도 할 겸, 칭찬도 받을 겸, 조잘조잘 재미있게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단순하지만 기특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이들이며, 이토록 아이들의 행복은 정말 소박합니다. 이런 때 저는 아이들의 기다림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만나거나 회식에 참석하여 술 마시는 일, 특히 고스톱 하면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동창회 모임도 정말 필요할 때아니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임은 제가 지금 굳이 참석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대학교를 입학한 후에 시간적으로 좀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서 참석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핑계를 댄다면 못 댈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집에 늦게 들어올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에, 누가 뒷전에서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단호한 의지로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에 빨리 올 수 있었고, 아내와 아이들과 마주 앉아 다정스레 오늘 하루를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모의 모습을 아이들이 보면서 자라고 있으며 아이들은 부모를 그대로 닮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다정스레 이야기한다는 말이 나왔으니 제가 아내와 대화하는 말씨에 대하여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저는 아내와 대화할 때 꼭 존칭어를 사용합니다. 물론 결혼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사용합니다.
이렇게 사용하게 된 것은 신혼 초부터인데 아내에게 존칭어를 사용하게 된 연유를 잠깐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제가 신혼 초 아직 첫아이를 낳기 전 어느 일요일, 집안 식구들의 모임이 있어 아내와 함께 아버님 댁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이제 결혼한 지도 꽤 지났고 아버님,
어머님께도 장가간 후 아버님 자식이 이제는 아내에게 꽉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과시도 할 겸 해서, 저는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에게 반말투로 이래라저래라 지시했습니다.
저는 아내와 단둘이 있을 때는 다정하게 지냈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이제는 제가 이 정도로 아내를 꽉 쥐고 산다는 것을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다른 식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도 평소보다 좀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말투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은 후, 한 시간쯤 흘렀을까요.
아버님께서 저를 아버님 방으로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버님께서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나 궁금증을 가지고 아버님 방에 들어갔습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 아까 보니 네 처에게 심하게 말하는 것 같더구나. 너는 네 집에서도 네 처에게 그렇게 대하니? TV 사극 드라마를 한 번도 안 보았니? 잘 알아 두어라. 옛부터 좋은
집안에서는 남편이 자기 부인에게 반드시 존댓말을 쓰는 것이다. 부부는 어느 누가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똑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네가 네 처를 무시한다거나 얕잡아 본다든지, 또 그런 식으로 반말을 한다면 남들인들 네 처를 어떻게 대하겠느냐?
네가 지금같이 네 처에게 대하듯 할 것 아니냐? 네가 네 처를 존중해 주어라. 그래야 앞으로 네 아이들이나 남들도 네 처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예, 잘 알아 듣겠습니다.” 저는 아버님께 이 말씀을 듣고 그 날 저녁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내는 저 하나를 믿고 시집온 것입니다. 아무리 부부 단둘이 있을 때, 잘해준다고 해도 공식적인 집안 모임에서 아내를 비하하는 이야기를 한다든지, 아내가 혹 잘못을 한 일이 있으면, 그런 일들을 좀 부풀려서 우스갯소리로 늘어놓는다든지,
시댁 식구 등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반말로 일을 시키거나 무안을 준다든지 하는 행동을 한다면, 단둘이 있을 때만 잘해주면서 그럴듯하게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고 제가 이런 철부지 같은 행동을 한다 해도, 아내는 시댁 식구나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 한마디 못하고, 당하고만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는 평소에 내 집안에서나 남들이 보고 있는 집 밖에서나 항시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예의 있는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칫 제가 잃어버릴 뻔한 기억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아버님께서 어머님께 보여주신 부부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어머님께 항상 존댓말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집안의 모든 일들 즉, 여러 가지 잡다한 일까지도 항상 도와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아버님을 따라 저희들도 어머님 일들을 종종 도와드리곤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집 안 청소하는 일, 걸레 빠는 일, 잠자리 이불 개고 펴는 일, 다리미질, 간단한 설거지, 잔심부름과 어느 때는 동생들 밥 차려 주는 일 등 다섯 남매를 키우시는 어머님께서 하시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쁘게 도와드렸습니다.
이렇듯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왔던 제가 결혼 후 달라질 뻔한 행동을 아버님께서 일깨워 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본래의 제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위하여 집안일도 같이 도우며, 아내를 진심으로 아껴주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이후부터는 아내에게 존대말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가사일도 제가 퇴근 후 어떻게 든 시간을 내서 더 많이 돕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저녁 식사 후 설거지, 집안 청소, 빨래 등을 제가 했습니다. 토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시장 보는 것도 꼭 아내와 함께 가서 장 꾸러미를 제가 들고 다녔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장 꾸러미를 들고 다니는 남편은 정말 찾아보기 힘든 때였습니다.
지금과 같이 차도 없을 때요, 대형 마트도 없었고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재래식 시장에서 장을 보아야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내와 함께 시장에 가는 것이 좋았습니다. 아내와 같이 장을 보면서 군것질도 하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하고,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유모차에 태워 온 아이에게 세상 구경도 시키고, 이러다 보면 아내와 여러 가지로 대화도 풍부해지고….
데이트가 별것입니까? 이런 것이 부부가 참 사랑을 나누는 진정한 데이트가 아닐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내가 줄기차게 권유해 왔던 술과 담배를 끊었습니다.
아내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제가 저의 욕심이나 만족감을 조금만 양보한다면 아내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설거지를 해주거나, 빨래를 하는 일은 사랑하는 아내의 고운 손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은 고무장갑이나 피부 보호제가 발달되었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할 때였기 때문에 아내가 설거지나 빨래를 많이 하게 되면 아내의 고운 손이 쉽게 거칠어지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결혼 생활이 20년이나 30여 년이 지난 뒤에 일을 많이 하신 어머니들의 손을 보게 되면, 처녀 때의 고운 손 모습은 사라지고
손바닥이 매끈해지며 심지어 지문까지도 닳아 없어지는 어머니의 손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내의 손을 보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물론 요즘같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은 파출부를 시켜 집안일들을 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저는 경제적으로 그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설령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손 치더라도
저는 저의 식구들만이 소꿉장난하듯 오손도손 단란하게 지내는 이 정겨운 집안 분위기를 남의 식구인 파출부가 옴으로써 깨지는 것도 싫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에 결혼 30년이 가까이 되었어도 전업주부인 아내의 손은 처녀 때와 비슷하게 곱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의 모습이 참으로 좋습니다.
어쨌든 이런 생활의 연속으로 큰아이가 3살 무렵 동생을 보게 되었고 그 후,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 대한 장래 문제를 토론하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이 다 그렇듯이 아이들을 낳게 되면 아이들이 귀여운 것은 말씀드릴 필요도 없고,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까 하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이런저런 생각들을 주고받을 그 시절에 어느 날, 아내가 종이 한 장을 저에게 내미는 것이
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기도문 같아요,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제가 얻어 왔지요. 한번 읽어 보셔요."
그 종이에는 ‘어버이의 기도’라는 기도문이 적혀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아이들이 잠들고 있는 방으로 가서 천천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또 읽었습니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릅니다. 읽고 또 읽고 저는 기도문을 수없이 읽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잠자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앞으로 아버지로서 제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방향을 제시해 주는 고마운 기도문이었습니다. 여기에 그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어버이의 기도
캐리 마이어스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이 하는 말을 참을성 있게 듣고
묻는 말에 일일이 친절하게
대답을 하도록 도와주소서.
면박을 주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아이들이 나에게 공손하기를 바라는 것같이
나도,
아이들에게 잘못하였다는 것을 깨달을 때는
나의 잘못을 말하고
아이들의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주소서.
공연히,
아이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를 비오며,
아이들의 과실에 대한 벌로
비웃거나 창피를 주거나
놀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소서.
나의 말과 행동으로써
정직은 행복을 가져온다는 것을
때로 증명을 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나의 마음속에 비열함을 없애 주시며,
잔소리를 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오, 주님이시여!
나의 기분이 언짢을 때,
나의 혀를 삼가게 하여 주소서.
아이들의 사소한 잘못에 눈을 감고
착한 일만 보도록 도와주소서.
아이들이 잘한 일에 대해서 서슴지 않고
진심으로 칭찬하게 하여 주소서.
아이들의 나이대로 아이들을 대하고
어른들의 판단이나 관습을
강요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일을 돌보고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기회를 빼앗지 말게 하시옵소서.
나의 본위적인 만족을 위하여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일을 금하시옵소서.
정당한 소원을 다 들어주고
아이들에게 해롭다고 생각하는 권리는
언제나 허락하지 않는 용기를 주옵소서.
나를 공정하고, 올바르고, 동정심이 많고,
사귐성이 있게 만드시어
아이들의 진정한 존경을 받도록 만들어 주소서.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아이들의 본이 될만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일이 있은 후 다음날, 저는 이 어버이의 기도문을 그대로 서랍에 넣어두면 지금의 이 마음이 곧바로 잊어지거나 식어질까봐 좀 큰 흰 종이를 사서 그 위에 사인펜으로 또박또박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방에 걸려있던 판넬 액자 위에 덧붙여 어버이 기도문 액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문 액자를 저의 침대 옆에 걸어놓았습니다.
매일 기도문을 보면서 아이들의 교육문제, 장래 문제를 생각해 보고 아버지인 제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반성하면서 올바른 행동을 가져보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이 기도문 액자는 글씨가 탈색되고 종이가 누렇게 변할 때까지, 그러니까 아이들이 고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10여 년간을 저의 침실을 지키고 있었으며 그렇게 세월이 흐르기까지 저는 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면서 이 기도문 액자를 붙들고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아이들과의 대화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아빠나 엄마에 대한 생각은 순수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이 사회의 생활을 잘 모릅니다. 그리고 아빠나 엄마가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아빠나 엄마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지위가 높은지, 낮은지 그리고 직업이 무엇인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또 이런 것들이 미래에 어린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저 아이들이 보기에 자신의 엄마 아빠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시고 제일 좋으신 분이며, 가장 똑똑하고, 인자하신 분이고, 가장 능력이 있으신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부모들과 비교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컴컴한 밤길에서도, 동네 큰 형들이 모여 있는 놀이터에서도,
또 어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는 곳일지라도 엄마 아빠의 손만 붙잡고 가면 두려운 마음이 싹 없어지고 즐거워하며, 모든 일이 다 해결되는 줄 알고 있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 제 1부 본문중에서 -
이렇게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중 어느덧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1학기가 막 지났습니다. 2학년 1학기가 지나게 되자 아이의 국어 교육이 어느 정도 마쳐졌다고 생각되어서 우리 부부는 이 책의 주요 내용인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영문학 교수님이나 영어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비영어권의 외국인이 영어를 어느 정도 숙달되도록 익히려면 적어도 3,000~4,500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를 하루 한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10~15년입니다. 이것도 지속적으로 매일 한 시간씩을 투자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교육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또 그렇게 기대하는 것도 무리입니다. 왜냐하면, 영어 선생님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영어 선생님은 그 자신이 그렇게 배웠듯이 독해력이나 영어 문법 부분만을 가르쳐 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말하기, 듣기에 약합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면 이런 현실에서 영어를 배우려는데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 있는 공교육만을 탓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부분을 사교육비를 엄청나게 들여 학원을 보내야 하나? 사교육비도 없는데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 안 들이고 영어 공부 잘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저는 영어를 말할 줄 모릅니다. 물론 듣기도 못합니다. 그저 ‘Good Morning, Thank You.’ 정도입니다. 또 봉급생활자라서 돈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영어 공부를 시켜야겠고 그래서 생각난 것이 제가 직접 영어를 저의 아이들에게 좀 빠른 시기
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가르쳐 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영어교육 방법은 제2부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저의 아이들은 영어를 배우려고 단 하루, 한 번도 미국 등 외국에 다녀온 일이 없지만, 초등학교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 때부터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를 가르친 후 5~6년 만에 영어 듣기는 물론, 말하기, 읽기, 쓰기,
짓기 등 여러 부분에서 숙달되고 특히, 외국인과의 직접 대화에서는 서로 한국말 하듯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되니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영어 시험은 모두 100점이었고 대학 수능시험도 만점 받았습니다. 토종 영어 학습이 성공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학교 성적이 좋으려면 영어 점수가 높아야 합니다. 영어 공부는 단시간에 안 되지만 기타 과목은 그래도 단시간에 공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 영어 공부를 잘하면 학교생활에 취미가 붙고 공부에 취미가 붙어 모든 과목의 성적이 우수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항간에 돈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처럼 자녀들을 초·중·고등학교 시절에 우리나라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조기 유학을 해서 수년간 외국에서 공부를 시킨 뒤, 다시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시키는 방법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외국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영어만큼은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특히 국어 등 다른 과목에서 실력이 뒤떨어져 전반적인 공부를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또 친구 관계도 원만치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에서 굳이 학생들이 외국 유학을 가서 잘못된 경우를 적을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일부이겠지만 유학을 보내신 부모님들의 말씀을 들어 보면, 유학하게 되면 영어 한 가지라도 확실히 공부하고 올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안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기숙사에 있다.”, “친구나 친척 집에 있다.”,
“엄마가 같이 있다.”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내 자식만큼은 잘못된 곳에 빠지지 않았다고 애써 부인합니다.
글쎄요. 부모님께서 옆에 계셔도 안심이 안 되는 현실에서 정말 안심이 되겠습니까?
엄청난 돈을 들여 유학 다녀와 과연 부모가 처음 기대한 정도의 위치에 다다른 학생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만약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수억 대에 달하는 유학비가 아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사교육비 등을 쓰지 않고 아낄 수만 있다면 아마도 가정의 경제 형편은 아주 넉넉해질 것입니다.
이렇듯 사교육비와 가정 경제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모님들이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만 저희 부부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가정 경제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유학비를 포함한 사교육비는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저희 부부가 직접 해결한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시켜보자. 엄마, 아빠가 시키면 될 것 아닌가? 한글 배우듯, 동화책 읽히듯, 노래 배우듯 하면 안 될 게 없지 않을까요? 아이들에게 우리 부부가 힘을 합하여 시간을 투자하면 될 것입니다. 이 방법이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학원비를 안 들이고 공부 잘하는 학생을 만드는 길이 아닌가요? 돈 버는 것이 따로 있나요. 사교육비 안 들이고 유학 비용 안 들이는 이 방법이 돈 버는 것이지, 어릴 때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면 커서도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이 될 것 아닌가요? 이것저것 겸사겸사 어릴 때부터 공부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고, 공부 잘하면 자신의 장래 진로를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학생이 되어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요?
- 제 1부 본문중에서 -
비록 저 자신은 영어를 잘 모르지만, 영어를 가르치는 데 아무준비 없이 그냥 가르칠 수는 없었습니다. 아빠가 영어 교과서와 자습서를 미리 보고 문장의 해석도 해봐야겠고 문장을 여러 번
숙달되게 읽어 아이 앞에서 아빠가 영어책을 읽어줌으로써 아이가 리스닝(듣기)할 수 있도록 영어책을 술술 읽어내는 아빠의 모습도 보여야 했습니다. 단어도 미리 찾아 익혀두어야 했고,
이제는 굳어 졌지만, 혀도 약간은 굴릴 줄도 알아야 하겠기에 혼자서 읽는 연습도 했습니다. 이렇게 준비를 한 후 아이와 마주 앉아 어제 내준 숙제를 꼼꼼히 점검하고 본문 읽기, 본문 쓰기,
단어와 숙어 쓰기 등 3가지로 나누어 각각 시험을 보고 시험마다 100점을 받을 땐 상금으로 1,000원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1과당 시험을 3번 보게 되는데 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
상금을 받게 되면, 그 상금으로 자신이 쓰고 싶은 곳에 자유로이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단어와 숙어 시험을 본 뒤 100점을 맞으면 상금을 주고 곧바로 읽기 시험을 봅니다. 이때 읽는 속도나 단어 억양 등이 정확해서 합격하여 100점을 맞으면
또 상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본문 쓰기 시험은 숙제로 주면서 영어 공부가 시작되면 맨 처음에 숙제검사 형식으로 시험을 치렀는데 본문을 5번 쓰기가 시험이라면 5번을 단어나 띄어쓰기 등 정확히 썼을 경우 즉,
100점을 맞을 경우에 또 상금을 주었습니다. 아빠가 읽는 본문을 듣거나 나중에 아이가 본문을 읽고 해석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상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은 공부할 때 당연히 해야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어 숙어 시험, 읽기, 쓰기 시험에서 한 문제만 틀려도 100점이 안 됩니다. 이때는 100점 맞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시간을 주어 계속 연습을 시킨 후 다시 시험을 보아 100점을 맞을 때 상금을 주었습니다.
이런 과정이 하루에 약 2시간 정도 매일매일 진행되었습니다. 일주일에 제가 약 5~6일 정도 했고 어쩌다 아주 드물게 좀 늦게 집에 오게 되면 엄마가 대신해서 숙제 점검과 영어 공부를 시켰습니다.
이렇게 공부하게 되니 아이의 영어 실력은 꾸준히 향상되었습니다.
- 제 1부 본문중에서 -
제가 아이와 함께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말 여름방학 때부터 시작한 영어 공부는 속도를 더해갔습니다. 아이가 부모가 가르쳐 주는 영어 공부를 속속 받아들이고 열심히 따라 준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줄 아십니까? 저는 그 어떤 귀한 것을 얻는 것보다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 무척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2학년 2학기 초에 이미 중1 영어 교과서를 마스터하고,
2학년 2학기 도중에 중2 영어 교과서를 마스터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교과서를 마스터하고 곧바로 중3 영어 교과서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똑같은 일들을 기쁘고 보람된 마음으로 계속하였습니다. 저는 퇴근하여 그날 아이가 영어 공부한 내용 테스트, 즉 본문 읽기, 영어 단어와 숙어 받아쓰기, 영어 본문 쓰기 숙제,
또 아빠가 읽어주는 영어 본문 듣기, 그리고 즉석에서 해석하기 등, 저는 조목조목 착실하게 테스트하였습니다.
아이는 잘 따라 주었습니다. 아빠가 칭찬해 주는 말을 듣고 싶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테스트에 100점을 받으면 상금을 주었습니다. 저는 기특하게도 영어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속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다른 사람들에게 입 밖으로는 떠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이와 영어 공부를 함께 하는 이런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남들처럼 여러 날을 비우며 여행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즐거움이 있는 곳에 한눈을 팔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두 아이를 알뜰하고 성의 있게 보살피는 시간만으로도 마음이 족하고 행복하였습니다.
이런 일 덕분에 부부간에 대화의 화제는 끝이 없을 정도로 풍부하였습니다. 서로 이런 일 저런 일을 상의하고 토론하자면 밤늦도록 시간이 아쉬웠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잠자리에서 잠들어 소곤소곤 자는 모습만 보아도 우리 부부는 기쁘고 흐뭇한 마음이었습니다. 사실 아이들은 부모들의 생의 연장이라고 보아도 크게 무리한 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부모님들께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온갖 정성을 들이고 있는 까닭도 이런 의미가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올바르게 교육받은 아이는 부모의 보물입니다. 그 아이가 훗날 성장해서 부모를 떠나 홀로서기를 하여 저희들끼리 독립한다 해도 보물은 보물입니다.
보물은 깨물어 먹는 것도 아니요, 가루를 내서 몸에 바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보물은 멀리서라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들이 성장한 후 스스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키우기 위하여 10년, 20년의 긴 세월 동안 묵묵히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지라도 그 아이가 내 보물이기 때문에 아깝지 않고 기쁘기만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이들을 제가 직접 가르침으로 인하여 저에게 얻어지는 경제적인 득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신혼생활을 하다 보면 의외로 생활비 자체는 적게 듭니다. 물론 이리저리 돈 쓸 곳을 찾으면 한이 없겠지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생활비가 많이 드는 것을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사교육비로 들어가는 돈이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 사교육비를 적게 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10년, 20년이 지나면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의 경제 사정도 훨씬 윤택해질 것입니다.
가정의 경제 사정이 좋아지면 가족 모두가 행복합니다.
가정의 행복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첫째로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것, 둘째로 자녀들이 공부 잘하고 올바른 품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만 성취된다면 가정의 행복은 보장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10명 중 하나 예외는 있겠으나 부부간의 행복도 보장될 것입니다.
행복은 거저줍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력하시는 분에게만 다가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에게 그 행복을 주는 아이들을 집에서 부모가 영어 교육을 직접 해보시자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가정의 경제 문제와 아이의 교육 문제,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려면 절대적으로 부모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노력은 확실한 결과를 확인해 가면서, 또 기쁜 결과를 눈으로 보면서 하시는 즐거운 노력일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 품에서 10년 이상을 교육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된 뒤에 부모님을 따돌리겠습니까? 부모님을 ‘나 몰라라’ 하고 저희들끼리만 조잘대겠습니까? 길고 긴 많은 시간을 엄마와 아빠와 코 맞대고 앉아서 공부하던 시절,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끊임없이 나누던 긴 시간들은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도 그대로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한 마디로 좋은 집안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사교육비를 거의 안 들였으므로 경제적으로 윤택해져서 노후에도 별 걱정 없이 지내실 수 있는 부모가 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말부터 겨울방학 때까지 중3 영어 교과서 공부에 전념하였습니다.
중3 영어 교과서의 진도 속도는 약간 늦었습니다. 문장도 길고 약간 어려운 단어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중1 중2 영어 교과서를 충분히 공부하였으므로 그리 어렵지 않게 공부해 나갔습니다.
겨울방학은 영어 공부를 집중적으로 공부시키는 데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시기를 이용하면 영어 실력이 부쩍 향상될 수 있는데, 이런 저의 기대에 맞춰 아이는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여 늘 학교 시험에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집안 식구가 협력하여 공부하다 보니
아이는 집에 오면 당연히 책상에 앉아 학교 숙제와 영어 공부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겨울방학도 다 지나고 3학년 1학기 중간이 되었을 때쯤 아이도
중3 영어 교과서를 거의 마치게 되었습니다.
중1 영어 교과서에 400단어, 중2 영어 교과서에 약 500단어 중3 영어 교과서에 약 500단어, 이제 조금만 있으면 중학교 3학년 과정의 영어 공부가 끝나고 아이가 알고 있는 단어도 1,400자 정도가 됩니다. 그러나 저의 아이는 부모가 영어 공부를 시켰기 때문에 영어 듣기, 다시 말씀드리면 원어민(서양 사람)에게 직접 듣기가 부족하고 직접 말하기도 부족하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영어 공부를 처음 시킬 때부터 이 부분이 부족할 것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듣기와 말하기를 배우려면 우선 영어 문장 읽기,
영어 단어와 숙어 외우기, 쓰기 등에 익숙해진 뒤에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선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공부시켰던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영어 회화를 배우는 데는 꼭 갈색 머리의 외국인, 다시 말씀드리면 서양인에게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저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까지 십여 년간 영어를 배웁니다. 그 과정에서 독해력이나 영어 문법 문제는 좀 알지만, 영어 듣기나 말하기는 거의 할 줄 모릅니다.
- 제 1부 본문중에서 -
큰아이가 이렇게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학교생활과 영어 공부에 집중하여 공부하고 있을 무렵 작은 아이도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두 아이를 집에서 양육한다는 것이 엄마로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나이 차이 때문에 아이들의 행동 방법이 달라서, 엄마가 아이들에 대한 시간차 관찰이 필요하고,
아이들의 친구가 다르고, 아이들 친구의 엄마들이 다르고, 아이들의 성격도 똑같지 않아 그때그때 상황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 아이를 돌보는데 종일 편히 쉴 때가 거의 없었을 텐데도, 제가 퇴근하여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면 아내는 언제나 즐거운 표정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물론 저녁 식사 후 청소와 설거지와 빨래는 저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아마도 아내가 하루하루 생활에 기쁨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저는 이런 아내의 마음을 알고 미리 가사 일을 기쁜 마음으로 도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항상 아내를 위로하고 아내가 하는 일에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누가 보는 사람도 없으므로 남자라고 체면 차릴 것도 없이 마음만 즐겁게 먹으면 서로 아껴주는 마음으로 협력하며 일을 좀 더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는 직장 일이 바빠 좀 늦게 퇴근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꼭 전화해서 식사를 먼저 하라고 하고 퇴근 후에 집에 도착하여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지난 3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하며 직장보다는 오히려 가정생활에 충실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직장을 아주 소홀히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가장인 제가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동시에 기쁘고 즐겁게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사실 아빠가 퇴근 후 집에 곧바로 오시는 것도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좋은 습관은 쉬운 일은 아니나, 처음부터 마음먹고 노력하시면 스스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늦게 귀가하는 습관을 들이면, 자꾸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니 아빠의 마음가짐은 가정생활에서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작은 아이가 학교에 입학함에 따라 저희 부부는 집안일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작은 아이는 형이 그 나이에 했던 것처럼 형에게 물려받은 책으로,
형이 했던 그 모습 그대로 형과 똑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형이나 언니가 있고 그 밑에 동생들이 있다고 가정할 때,
부모님들은 우선 큰아이에게만 온통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큰아이가 잘하면 작은 아이도 잘하겠지 하고 착각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반드시 공들인 만큼 큰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쓴 만큼 아이들이 똑똑해진다는 뜻입니다. 큰아이가 잘한다 해서 작은 아이에게 좀 소홀히 하면 초등학교 시절에는 표가 안 나는 듯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표가 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주위에서 흔히 보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흔히 보셨다면,
부모로서 자신은 이 경우에 속하지 않아야겠다고 예상하고 노력하여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아이들이 성장해서 훗날 결혼생활을 각각 하게 된 후, 형제간 또는 자매간에 경제적인 면에서, 또는 사회 지위에서 또는 성격과 인품을 갖추는 면에서, 큰아이와 작은 아이가 각각 차이가 난다는 것을 부모가 아신다면, 겉으로 말은 못 해도 서글픈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부모님의 아이에 대한 교육적 관심의 차이에서 발생할 확률이 제일 높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중고등학교 학생을 자녀로 둔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 편입니다. 그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꼭 자녀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부분 형이 공부 잘하면 동생은 좀 떨어지고, 동생이 공부 잘하면 형이 좀 떨어지는 가정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렇게 형과 아우, 언니와 동생들의 학교 공부에 대한 실력 차이를 알고, 뒤늦게 후회하시는 부모님들을 많이 만났던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늘 아내와 두 아이의 균형적인 교육 문제에 관해 대화해왔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이에게도 형과 똑같은 교육 방법을 택해서 집에서 가르쳤던 것입니다.
작은아이도 즐겁게 형의 발자취를 잘 따라 주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힘들었지만 즐겁고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남같이 부유하게 잘은 못해주었지만, 아내는 항상 아이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고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의 모습은,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제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고,
저의 아내와 같은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같이 이렇게 생활하는 것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저희 부부가 예상했던 대로 형처럼 학교생활을 잘 해주었습니다. 역시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작은 아이도 형이 쓰던 중1 영어 교과서로 영어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한층 바빠졌습니다. 결혼 초부터 줄곧 그래 왔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 학교 갈 때까지는 항상 집안이 바삐 움직였습니다. 저는 출근을 위하여 해야 할, 저에 대한 모든 일은 제가 스스로 한 것은 물론이고, 아침 식사 차리는 일도 틈틈이 아내를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아내는 집안 정리와 하교 후 아이들이 해야 할 공부를 구상하고, 준비하고, 한숨 좀 돌릴라치면 곧바로 오전반인 작은아이가 학교에서 옵니다.
점심 식사 먹이고, 엄마는 아이의 친구가 되어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와 재미있게 지낸 이야기 들어주며, 아이와 잠깐 놀아 주고, 학교 숙제와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또 영어 공부를 시키고, 작은 아이의 스케줄에 엄마가 함께 지내다 보면,
큰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옵니다. 그러면 다시 큰아이에 대한 일들이 새롭게 생겨납니다. 큰아이의 하루 생활에 맞춰 엄마는 또 다른 일들을 시작합니다.
- 제 1부 본문중에서 -
큰아이나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아이들과 함께 틈만 있으면 저 자신을 위한 공부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공휴일이나 일요일은 교보문고나 시내 나들이도 갑니다만,
노는 날마다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아이들에게 학습의 태도도 가르칠 겸 아이들과 함께 독서실에 자주 갔습니다.
독서실은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시립 독서실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그날 공부할 것을 모두 각자 챙겨서 가방을 메고 독서실에 갑니다.
그 당시 입장료는 1인당 100원이었습니다. 항상 자리는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아빠가 바로 옆에서 공부하니 아이들도 조용히 자기 공부를 하였습니다.
점심때는 엄마가 시간에 맞추어서 점심식사를 가지고 오십니다.
저와 아이들은 이 시간을 기다립니다. 아내가 펼쳐 놓은 도시락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도 좋아서 맛있게 식사합니다. 봄, 여름, 가을에는 밖의 잔디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겨울이나 비가 올 때면 실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합니다. 보라매공원은 넓고 경치도 좋습니다.
소풍 온 기분입니다. 지금도 아이들은 그때 그 시절 가족과 함께 식사했던 추억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도시락을 싸오셨던 엄마의 고마움과 옆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아빠의 모습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저 자신이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서 공부했지만, 이렇게 틈만 있으면 저 자신을 위한 공부도 했던 결과로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 저는 세무사 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저는 직업이 바뀌어 가정환경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부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뒤로 몇 년 더 틈만 있으면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보라매공원 독서실을 찾았습니다. 독서실은 아침 6시에 시작하여 밤 10시까지 운영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있는 날이면 마지막 끝나는 시간 밤 10시까지 공부를 하였습니다. 저는 늦게까지 아빠와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이 기특하였습니다.
평일에는 평일대로 일요일에는 일요일대로 가족과 함께 즐기며 큰아이의 중학교 시절과 작은아이의 초등학교 4, 5, 6학년 시절은 이렇게 알차게 지났습니다.
- 제 1부 본문중에서 -
대학생이 되면 아이들은 자기의 능력을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의 갈 길을 생각합니다.
이때 부모님께서 아이들과 여러 방면으로 신중하게 장래를 생각하며 대처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아이들 생각과 부모님의 생각이 다르시다면 굳이 부모님의 생각을 고집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께서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물고기를 잡아서 주지 않고 낚시하는 방법,
즉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과 영어 공부를 가르치셨다면 아이는 스스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장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어 실력이 좋기 때문에 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한 후 과학자가 되든, 샐러리맨이 되든, 자영 사업가가 되든, 고시공부를 하든, 어떤 분야로 진출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성공은 확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곧 선진국 대열에 올라갈 것입니다. 이미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의 일들은 세계를 무대로 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미 세계어가 되어버린 영어는 필수적이고 영어에 능한 사람일수록 인재로 취급받는 시대가 곧 올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대학 시절 남자아이인 경우 군 복무를 포함해서 7년,
여자아이인 경우 4년이라는 기간 내에 아이들의 인생의 기초가 결정된다고 보아도 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로 이 기간에 보석거리는 보석으로서의 구실을 하기 위해 연마되고, 연마된 보석만이 보석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석거리의 보석 연마 작업에 힘써온 아내를 생각하며 저는 제 나이 50대 후반이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내를 도우며 아이들의 장래 문제에 대하여도 틈만 있으면 아내와 논의했고,
아이들과도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성장한 아이들과 장래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는 일은, 아이들이 이제 곧 홀로서기를 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아이들이 걸음마를 처음 배우던 시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 아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걷게 하려고 아이의 두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걸음마 연습을 시키고, 또 시키고 했던 아내를 생각해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혼자서 걷게 되었을 때, 안도의 웃음으로 손뼉을 치며 좋아했던 아내의 모습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아이들의 장래에 대하여 아내와 대화를 해보았는데, 그때 제가 느낀 아내의 생각은, 성장한 아이들이 그 옛날 걸음마를 배워 홀로 걷던 그 모습 그대로 홀로서기에 성공하여,
제 발로 걸어서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해 주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바람은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저의 아이들은 아빠인 제가 집안일을 하며 엄마 일을 도와주고 있는 일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아빠가 집안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아빠가 집안일을 하는 것에 대하여 별로 무관심한 듯 별말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모든 아빠가 다 그렇게 하는 일로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아빠가 설거지나 집 청소를 하려면 아이들도 가끔 도와줍니다. 특히 설거지를 도와줄 때면 저는 “그만두어라, 아빠가 하지.”라고 말합니다만, 한사코 저희들이 한다고 뛰어들어서 설거지를 시작하는 모습을 볼 때, 저의 마음이 뿌듯합니다. 저는 속으로 “그래, 너희도 장가 들어서 아빠같이 그렇게 너의 아내를 도와주어라. 그리고 재미있게 살거라.”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집안일 도와주는 것도 아이들과의 대화입니다. 이런 하찮은 소재로 대화는 얼마든지 재미있고 즐겁게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제 1부 본문중에서 -